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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후기

여러분의 생생한 경험을 나누고, 따뜻함을 공감해 보세요.

카자흐스탄 탈가르 봉사



#1 카자흐스탄. 베트남 이후 3년 4개월만에 가게 된 해외 봉사 지였다.

사실, 처음에는 애란원(미혼모시설)에서 같이 봉사를 하고 있는 

김은희 선생님께 올해 해외봉사로 

키르키즈스탄을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왜 그랬을까? 역시나 그 아이 때문인가? 

외과 전공의를 하던 시절, 

키르키즈스탄에서 간이식을 받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왔던 한 아이를 만났다.

간이식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본국으로 향했던 그녀는 

6개월만에 이식거부 반응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고 

한달 만에 하늘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그녀의 주치의였다.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하고 고작 눈물을 흘릴 뿐이던, 

무기력함에 허우적대던 주치의. 

내 잘못이든, 아니든 내가 담당했던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미안함과 자책감에 한동안 사로 잡히게 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환자와 관련된 무언가와 마주하게 되면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에 또다시 먹먹해지곤 한다. 

나의 마음 속 깊이 여전히 존재하는 

그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덜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키르기즈스탄이 아닌 카자흐스탄을 가게 되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변하진 않았다. 

키르키즈스탄과 가깝고 비슷한 문화를 가진 카자흐스탄에 가는 것만으로도 

그곳을 다녀온 것과 비슷한 마음이 들 것 같았고, 

중앙 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되어 고통을 당했던 고려인들에게 

무엇인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힐뿐이었다. 

다행히 봉사일정도 가능한 시기여서 

주저함이 없이 봉사 신청을 할 수 있었다.  



#2 출발 당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봉사단원들을 처음 만났다.  

반가운 얼굴들이 몇 더 있다고 낯가림은 어느새 반으로 줄고 

기대감에 마냥 설레고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6시간 30분의 짧지만은 않은 여정끝에 도착한 카자흐스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알마티 공항에서 사전에 약속되었던 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인지, 

약품 반입이 막히면서 공항에 잠시 체류하게 되었다. 

약품이 담긴 카트 하나를 끌고 있던 나는 

괜히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검색대로의 입장도 거부 당한 체 

그곳을 통과한 사람들을 부러움 가득한 눈길로 바라봐야만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우리의 카자흐스탄 조력자이자 해결사이신 이현경 선생님께서 공항에 도착하신 후 

검색대 직원들과 약품은 

뒷날 아침에 담당공무원이 출근하면 찾아가기로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들은 무사히 숙소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서야 살포시 인사를 나눠본다. 

"안녕! 카자흐스탄, 만나서 반가워!" 



#3 우리가 머물게 된 ‘알마티 호텔’은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였던 알마티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라고 했다. 

약 50년전 구 소련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지어진 곳으로 

건물 꼭대기에 왕관 모양을 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왕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기위해 

우리는 각도와 거리를 조절하며 얼마나 부단히도 노력했던가. 

그들의 개인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 참겠다. 

호텔 조식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는데, 

가장 맛있었던 건 사과와 요거트였다.  

알마티가 ‘사과의 아버지’라는 뜻이라던데, 역시나 이름값을 하는군! 

요거트는 왜 이렇게 맛있지? 하긴, 나는 요거트 킬러인데…… 

맛없는 게 이상한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매일 아침 굉장히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는 해외여행을 하면서 음식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음식이라면 웬만한 거는 

다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꿀미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단코 이곳의 호텔 조식은 정말 맛있었다!!! 



#4 카자흐스탄에서 우리가 봉사할 곳은 

알마티에서 40분정도 차로 이동을 하면 도착할 수 있는 

탈가르 지역에 위치한 ‘탈가르 시립병원’이었다. 

의료봉사 장소가 병원이라니…… 

이것부터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같은 진료실 안의 한쪽에서는 현지 의사들이 본인의 환자들을 유료 진료하고 

다른 쪽에서는 우리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하는 많이 이상하고 불편한 시스템이었다. 

또, 우리가 진료를 했던 건물은 두 동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는데, 

한 동에 소아과, 내과, 외과, 치과의 진료실과 초음파실이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 탓에 

다른 동에 물리치료실, 한의학과, 약국이 배치되었다. 

각 과 및 약국까지의 동선이 멀고 복잡해서 필요한 물품들을 요청하거나 

봉사자들끼리 의사소통을 할 때는 카카오톡의 단톡방을 이용해야 했고 

환자들에게 약국의 위치를 설명할 때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말해주거나 지도를 그려주기도 했다. 

물품은 주로 간사님들이 찾고 가져다 주셨는데, 

먼 거리를 왔다 갔다 뛰어 다니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힘든 내색 한번 없었던 그들에게 고마웠다. 

간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과 중압감이 크겠지? 

때론 안쓰럽기도 했다.


여튼, 첫날은 이상한 것 투성이었는데,  

4일동안 하다보니 점점 모든 상황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른 나라에 대해 이상하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라고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마음과 

한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불편한 상황이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5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한국이 의료선진국이니까 한국에서 온 의사들도 

뛰어난 실력을 가졌을꺼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현지 의사보다 한국의사에게 진료를 보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5~7년전 촬영했던 영상검사 결과지를 들고 와서 판독에 대해 묻기도 했다. 

심지어 당일, 현지 의사에게 진료를 본 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진료를 보는 환자도 있었다. 

현지 외과 전문의는 우리가 상처 소독을 할 때 옆에서 지켜보다가 

한국에서 가져간 치료제 및 연고 하나에, 드레싱 하는 모습에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 세우기도 했다.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한켠이 부끄러웠다. 

내가 과연 저 의사가 감탄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의사일까? 

나는 다만, 다양한 치료제와 연고들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 덕을 보는 건 아닐까? 

근본적으로 저 의사보다 상처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이런 자문들이 부끄러움에 한 몫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진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의료 봉사 현장에 와 있고, 

누구의 시선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돕고 싶다던 그 마음을 담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때론, 가장 단순한 것이 정답일 때가 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통해 배움을 얻을 때처럼 말이다. 



#6 통역은 카자흐스탄의 한국어과 대학생들이 맡아주었는데  

어려운 한국어 단어나 생소한 의학용어 때문에 

첫날은 용어 검색하느라 힘들어하며 

점점 얼굴이 누~렇게 뜨는 것 같더니, 

날이 갈수록 자주 보는 질환에 대해서는 

‘알아서 척척’ 추가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기특하고 예쁜 똘똘이에게 통역을 받게 되다니,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순수하고 해맑은 그들의 모습에 

무장해제가 된 듯 하였다. 

그래서일까? 

함께 봉사하고, 함께 관광을 하며 

마음을 나누는 동안 금새 정이 들어버렸다. 

나이가 들고 이별에 대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헤어지는 것에 대해 무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이만큼이나 먹고 숱한 헤어짐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눈물이 나고 슬프다. 

언젠가 쿨하게, ‘웃으며 안녕’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조금, 질척대는 스타일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7 어벤져스 봉사팀. 카자흐스탄 봉사팀에게 붙여진 별칭. 

물론 자칭이긴 하다. 

대부분이 다년간 국내 봉사와 해외 봉사를 경험한, 

그야말로 ‘베테랑’들이었다. 

나도 열린의사회에 가입해서 해외의료봉사도 다녀오고 

국내 봉사도 몇번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들 앞에서는 돌도 안된 아가의 배밀이에 불과했다.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는 난감한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며 개선해 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과연 베테랑다웠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척척척’ 열심히, 잘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본인이 할 일이 끝나면 스스로 다른 일을 찾아 하거나, 

다른 팀을 돕는 것이 몸에 베인 사람들이었다. 

일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마음 밭도 ‘어벤져스’였다. 


배려와 착함이 여기 저기 구석 구석 

물들어 있는 사람들. 

나의 삶에 좋은 향기를 실어다 주는 그들 덕분에 

나도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이 

할 일이 더 없을까? 찾았던 것 같다.


나는 들꽃이 참 좋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꾸밈없어 보이는 모습이, 

갖은 비와 바람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곱고 말간 모습이 참 예쁘다. 

우리 어벤져스 봉사팀은 들꽃을 닮았다. 

봉사할 때 보면 누구 하나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지만, 

땀으로 얼룩진 얼굴과 머리일지라도 곱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들꽃과 닮아있는 그들의 모습이 참 좋다. 



#8 카자흐스탄은 원거리 이동 없이도 

‘밤도시’의 화려함과 ‘낮자연’의 웅장함을 

같이 느낄 수가 있어 여행지로도 좋은 것 같다. 

밤도시의 화려함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역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봉사가 끝나고 밤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콕토베에서 바라봤던 

알마티의 야경은 마음을 들뜨고 설레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작은 불빛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든 하모니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봉사를 마치고 한나절 반이라는 귀한 시간이 있어 

우리는 본격적으로 낮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마주하기 위해 나섰다.

산과 나무에 둘러쌓여 옥색에 가까웠던 이식호수에서 보트도 타고, 

탈가르로 이동할때마다 보이던 만년설이 존재하는 곳, 

침블락에도 올라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내가 처해있는 상황(더위)과 다름에 대한 동경때문 이었을까? 

아이러니한 상황이 환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만년설이 신기하고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막상 침블락에 올라가서 보니, 

웅장하고 멋지긴 했지만 멀리서 볼 때보다는 감동이 덜했다. 

오히려, 침블락에 오르며 보았던 수많은 들꽃들과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는 것 같은 

이름없는 풀들의 모습에 더 시선을 빼앗겼다.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 있고, 

때론 그것이 더 귀하게 여겨질 때가 있는 것 같다.


매번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무엇을 보고 어디를 갔는지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보고 느꼈느냐가 더 크게 와 닿을 수도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바라보는 풍경은 

그곳이 어디든지 아름답고 행복한 마음을 부른다. 



#9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있다면 

왼손 밖에 들 힘이 없어도 

옆 사람이 오른 손을 들어 줄 수 있다. 

그러니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해외 봉사를 가면, 

그런 사회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나의 어설프고 엉성한 빈틈을 채워주는 누군가가 있다. 

나눔과 공존, 배려와 헌신의 가치를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ubuntu’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남을 돕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봉사가 끝나고 나면(특히, 해외봉사)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봉사를 다녀온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10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카자흐스탄의 최연소 막내단장 25살 김은희 선생님, 

열정적인 아모르 파티의 주인공 오창영 선생님,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홍은수 선생님, 

언제나 멋지고 중심을 잘 잡아주는 민경란 선생님, 

진정한 체력왕 전차열 선생님, 

은수쌤의 오른팔 순딩이 서산댁 고재미 선생님, 

눈물나게 웃긴 에피소드 던져주신 우리의 공배우 공혜진 선생님, 

솔직 발랄 다리미인 박은화 선생님, 

묵묵히 열심히 일하시던 red 열정 김진호 선생님, 

눈 마주치면 배꼽인사 나누던 김형찬 선생님, 

아낌없이 3일내내 선풍기를 빌려주던 마음마저 예쁜 백이슬 선생님, 

카자흐스탄 공식 사진기사님 변공 선생님, 

작은 몸으로 넓은 포용력을 가진 서리나 선생님, 

명랑 쾌활곤돌라 쳐키 서주희 선생님, 

핸드폰을 찾게 해준 나의 은인 신정은 선생님, 

친절한 아귀 파워녀 심작가 심은경 선생님, 

또 만나서 반가운, 재치쟁이 안성준 선생님, 

박물관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던 막내 2등 유리, 

취향 비슷한, 웃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운 권유진 선생님, 

일찍 가서 아쉬웠던 참한 막내 은종이, 

파리에게마저 다정다감한 이형우 선생님, 

나의 빈틈을 채우느라 고생 많았을 고맙고 소중한 내친구 혜미.


마지막까지 아픈 목을 이끌고 

현지 통역을 해주셨던 카자흐스탄의 김옥자 선생님


우리가 카자흐스탄으로 봉사를 갈수 있게 

가교 역할과 해결사를 자처해주신 이현경 선생님


몸도 마음도 고생 많았을, 존재 자체가 든든했던 박인철 실장님과 양현모 간사님


2019년 162차 카자흐스탄 탈가르 의료봉사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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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이런 영아쌤 작가셨군요. 감사해요. 늘 함께하는 봉사를 선물해 주셔서... - 25세 단장 올림 (죄송^^) -
  • 저는 이름에 미소가~ 우리 영아샘은 얼굴에 미소가~~ 그런데 제가 진것같애요~ 영아샘가슴에 카자흐스탄의 맑은 보라빛들꽃같은 순수함과 열정이 너무 뜨거워 어이없게 아름다워 미소가~♡
  • 정말 즐거웠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네요. 너무나 즐거운 봉사였습니다!♡♡
  • 감동후기에요~♡ 선생님의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에 절로 입꼬리가 상승 중입니다^^
  • 멋진후기네요 귀여운 볼매!! 만년아가같은 미소가 떠오르네요 함께해서 감사합니다 수고많았어요 늘 변치말고 사랑해요!!
  • 발랄하고 귀여운 영아쌤 짱^^ 또 만나용 우리~
  • 현생을 살다보니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은 카자흐스탄에서의 추억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는데, 영아쌤의 후기를 보니깐, 그때의 상황들과 감정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네요... ㅎㅎ
  • 우와~ 후기가 한편의 영화같아요. 한분한분 기억하며 감사인사에 눈물 흘릴뻔.. 함께해서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영아 러브러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