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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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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2019.11.25) 라오스 방비엥 의료봉사 활동 후기

뜨거운 볕 아래 슬며시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던 가을의 초입이었다. 병원 일로 너무 힘들어 하는 내게 엄마는 밥상을 차려주며 말했다. “그래도 좋은 일 하는 거잖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인데 당연히 쉽지 않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을 앞에 두고 나는 숟가락도 들지 않았다. “근데 엄마,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사자(死者)인지 모르겠어.” 라고 말했다. 병원에 있으면 어느 날은 사람이 이렇게 쉽게 떠날 수 있구나 싶어 허망하다가 어느 날은 생이 이렇게도 끈질길 수 있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꼈다. 내 환자들은 꽤 오랜 시간 버텨주었지만 그 즈음, 하나 둘 씩 떠났다. 누군가 가을은 실()의 계절이라 했지만 내게는 끝없는 실()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로 일한 1000일의 시간 동안 내가 내게 꾸준히 던졌던 질문은 너는 왜 살아?’였다. 여유가 생기면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또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백수 된 지 2주 만에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이전 병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웠다. 내가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사람이 싫은데 다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전혀 다른 환경 덕분인지 지금 이 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간호사로서 정말 행복하다. 3교대를 하다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서 이 잉여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 해서 찾게 된 게 의료 봉사활동이었다.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져보던 중에 찾게 된 게 열린의사회였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의료 봉사활동 단체 중 가장 꾸준히, 넓은 지역사회에 손이 닿는 단체였다.

 

1회 국내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근무하던 3차 대학병원, 2차 종합병원과는 다르게 환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1차 의료기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1회의 짧은 시간의 봉사활동이지만 그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중요한 기회라는 걸 알게 되는 상황이 매번 생겼다. 그래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 했을 때 뒤지지 않는 의료 체계와 의료보험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의 실정도 생각보다 열악한데 해외는 어떨지 궁금했다. 매달 같이 국내 봉사활동을 하며 친해진 서영 선생님이 같이 해외 봉사활동 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마치 오래 전에 예정이라도 되어 있던 듯 흔쾌히 수락했다. 여행은 아니지만 여행 계획을 세운 것만큼이나 설레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좀 쉬지, 그나마 쓴 휴가도 봉사활동이냐는 상사의 말도 따뜻한 격려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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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맡게 된 업무 분장은 한의과였다. 처음에는 ?’ 싶었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과를 경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서 한의과에서는 간호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내가 어떤 부분을 맡게 될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가서 보니 그 옆의 재활의학과도 환자가 넘치는데 어시스트 할 사람이 없어 처음에는 헬퍼로 갔지만 자연스럽게 재활의학과 고정멤버가 되었다. 재활의학과에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우려도 했지만 다행히 민영기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고 즐겁게 일했다. 환자가 몰렸을 때 괜찮아요. 기계적으로 하면 돼.” 라는 선생님의 말에 신규간호사로 처음 외과 어시스트 했을 때의 기억이 플래시백 되었다. 정규 procedure와 드레싱 스케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상대적으로 내과에서는 그런 몰입의 경험은 잘 없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처음의 마음가짐을 반추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진료를 해주려고 노력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꾸준히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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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다른 과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지 슬며시 보는 것도 재밌었다. 재활의학과 바로 옆에 있어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던 한의과는 끊이지 않는 환자에도 제현태 선생님과 유경숙 선생님, 정재우 선생님은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일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이 즐거웠다. 생각보다 환자가 많았던 산부인과는 최현수 선생님이 열심히 큰 목소리로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풍선에다 해부도를 그린 유보영 선생님의 재치가 돋보였다. 그리고 내과 특유의 차분함과 전문성이 빛나던 나지선 선생님, 자신을 보자마자 우는 아이를 열심히 달래면서도 보호자와 의사소통을 꼼꼼히 잘 하시던 최은지 선생님을 보면서 정말 본업을 잘 하는 사람들이 가장 멋있다는 걸 느꼈다.

건물 바깥에서 치과와 약국은 같은 건물에 있지 않아서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가끔 기웃거리기만 해도 그곳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몰리는 환자들을 열심히 분류하고 바이탈과 혈당 검사를 해주시는 선생님들은 건물 밖에서 더 더우셨을텐데도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진료가 지연되지 않게 잘 도와주셨다. 그리고 날이 지날수록 더 많아지는 아이들을 전담 마크하던 놀이봉사 선생님들도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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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라오스 팀은 일할 때도 열심히, 놀 때도 정말 열심히 잘 노는 팀이었다. 사실 팀워크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인 환경에서 잡음과 마찰은 필수 불가결한 게 사실임에도 전 일정에서 큰 문제 한 번 없었고 돌이켜보면 웃었던 기억들만 난다. 생각보다 조금 힘에 부치는 스케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항상 웃고 잘 협력해준 덕분에 나의 첫 해외봉사활동은 성공적이었다. 벌써 다음 해외봉사활동은 어디로 갈지 고민이다.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 일 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짧은 백수기간 동안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중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대사 하나가 뇌리에 박혔다. 그 이후로 우연인 듯 운명인 듯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질문이 나를 멈추게 하지 않을 거라는, 나를 가장 울게 만든 것들이 나를 가장 웃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내 발로 답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점점 그 답에 가까워지게 되리라는 실감이 생겼다.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46일의 시간동안 모든 과정의 전반을 살피느라 애쓰신 윤대영 과장님과 양현모 간사님, 그리고 현지에서 너무나도 애써주신 코이카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늘 옆에서 함께 해준 내 봉사활동 메이트 김서영 선생님, 환상의 룸메 방성원 선생님 고맙고 우리 오래 봐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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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 내룸메ㅠㅠ 또 같이 갈거에요!!!ㅎㅎ나약한 룸메땜에 고생많았어요^^♥
  • 선생님 ㅎㅎ 해부도 최현수 원장님께서 그린거라는.. 바빠보였는데도 차분하게 하시던 쌤이 생각나네요~
  • 일할때도 열심히,,놀때도 열심히,,,완~전공감..
  • 아 우리 생각난다 ㅋㅋㅋㅋㅋㅋ해외봉사 가자고 하고선 진짜 바로 왔어 ㅋㅋㅋㅋㅋㅋ 선생님은 내꺼야 내 소중한 메이트 ... 따랑해용 소희팍